여성판 N번방’은 ‘N번방’이 될 수 없다

크린 0 06.26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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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함께하는페미니즘'은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고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실천하고자 교육, 연구,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들>은 그간 가부장제 아래 왜곡된 남성성에 변화를 만들고자 남함페 활동가 5인이 남성 섹슈얼리티, 관계, 돌봄 등 남성의 삶 전반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톺아보려 한다.


ⓒ픽사베이

ⓒ픽사베이



우리는 중립을 지키려는 욕구가 있다. 한쪽을 선택함으로써 발생할지 모를 갈등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다. 치킨의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중식당의 짬짜면은 그런 사정을 그대로 반영한 식문화일 것이다. 사실 어떤 사안을 판단함에 있어 양측의 입장을 듣고 심사숙고하는 것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양비론은 그렇게 등장한다. 둘 다 똑같이 문제가 있다는 입장은 그 자체로 공평해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측 사이에 힘의 차이가 있을 때, 양비론은 폭력이 되기도 한다. 둘 모두에게 똑같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양비론이 성립 되려면 양측이 객관적으로 똑같은 위치에서 동일한 자원과 문제해결력을 갖고, 완전히 자율적으로 선택을 내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별, 젠더와 관련된 이슈는 그렇지 않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성별에 따른 위계가 자리 잡은 구조 속에서 양비론과 같은 기계적인 평등은 틀린 입장이 된다.


젠더 관련 이슈에는 '남자 여자 둘 다 똑같이'라는 기계적 평등이 따라다닌다. 여자는 왜 군대를 안 가는지부터 남성가족부가 없는 이유를 묻는 질문까지 모두 기계적인 평등에 근거한 생각이다. 최근 '여성판 N번방'이라고 불리는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한 여성 커뮤니티에서 남성을 대상으로 개인 신상을 노출시키고 성희롱과 성적 대상화를 했으므로 N번방과 똑같이 처벌하라는 주장이 대두된 것이다.


ⓒ신윤지·여성신문

ⓒ신윤지·여성신문



그러나 '여성판 N번방'='N번방 사건'은 성립하지 않는 도식이다. 물론 이번 여성 커뮤니티에서 벌어진 사건은 법적 처벌의 소지가 있다. 상대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유출하고, 특정인의 몸매와 성기에 대한 품평과 성희롱이 오갔기 때문이다. 사건의 양상이 N번방과 같이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특정 성별을 성적대상화하며 디지털 성범죄로 이어졌다는 공통점도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범죄 행위의 수준과 인권 침해의 정도를 파악했을 때, 그것이 진정 N번방 수준에 이른다고 생각하는가?


돈을 벌기 위해 미성년자를 장기간 성착취하며 영상물을 생산해내고 그것을 다수에게 판매한 N번방과는 범죄의 무게와 죄질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 법률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럼에도 이 사건에 대한 주된 반응은 또다시 기계적 평등에 근거한 억울함의 호소로 이어지고 있다. 같은 온라인에서 일어난 성범죄임에도 여성은 경미하게, 남성은 심각하게 처벌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처벌의 정도는 사안의 경중으로 판단되는 것이고, 여성이라고 법을 피해 갈 수는 없음에도 그렇다.


만약 이번 사건이 '여자라서 처벌을 안 받는다'가 성립되려면, 기존 N번방 사건은 남자라서 처벌받았다는 것이 성립되어야 한다. N번방은 남성을 처벌한 사건인가? 타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중차대하게 침해하고 미성년자 및 여성을 성착취한 자를 중형으로 처벌한 것이지, 남자라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성별에 근거한 성차별이 아니며, 앞선 주장은 성립불가능하다.


왜 유독 젠더 이슈에서는 기계적 평등을 철저히 고수하려는 경향이 나타날까? 여성이 겪는 차별의 실태를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이 겪는 문제, 곧 남성이 관계된 문제가 아니라 두루뭉술한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어야 구체적인 피·가해의 양상과 힘의 차이가 감춰진다. 또 양쪽의 문제라야 사회문제가 아닌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심리적 여건이 조성된다.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똑같은 선택을 내릴 수 있는데,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지 못한 개인들의 문제로 사건을 쉽게 결론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 한국성폭력 상담소의 성폭력 피해자 상담 비율은 89.2%가 여성이다. ⓒ여성신문

2023년 한국성폭력 상담소의 성폭력 피해자 상담 비율은 89.2%가 여성이다. ⓒ여성신문



2023년 한국성폭력 상담소의 성폭력 피해자 상담 비율은 89.2%가 여성이다. 남성 피해자의 상담 비율은 8.6%이다. 모든 성폭력 피해자는 절대적인 지원과 지지가 필요하다. 남성 피해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를 두고 '성폭력은 남성과 여성에게 똑같이 일어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 가해자의 성별은 84.4%가 남성이다. 모든 가해자가 남성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성폭력은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일으킨다'고 말할 수 없다.


이때 필요한 건 남성과 여성을 어떻게든 동일선상에 놓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안전을 보장하고 동시에 남성 내부의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미 기울어진 경사로 위에서 중립과 50대 50의 평등을 외치는 것은 현실인식을 위태롭게 할 뿐이다. 우리가 택해야 할 관점은 통계적으로 드러난 성별 격차를 해소하고, 누구도 성별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성평등이다. 기계적 평등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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